2008년 04월 19일
취업준비중인 친구에게 간만에 전화를 걸었다.
동기들이 다 4학년 또는 취업준비중이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싸이라도 자주 하면 좀 알텐데, 어째 내 동기들은 다들 싸이를 접었다.
지난 총선때 동기들에게 [진보신당찍읍시다]하는 단체문자로 슬쩍 연락을 취하긴 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좀 미안한 짓이었다. -_-
그래서 겸사겸사, 한 동기가 최근에 최종면접이 있었는데 그 뒤로 연락이 없어서 먼저 전화를 걸어보았다. 취업준비생에게 이렇게 먼저 연락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먼저 연락하지 말아야 겠다는;;)
30분 넘게 통화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잘 될거야. 힘내' 뿐이었다. 사실 잘 될거란 말도 웃기고 힘내란 말도 웃기다. 그 친구는 내 위로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을 설명해주어야했고, 나는 (너는 슬픈 상태이고) 나는 그 슬픔을 반으로 나누고 있다. 는 것을 애써 연기해야 했던것 같다. 도움? 이 되고 싶었는데 도울수 있는 것도 없었고, 다만 그 친구가 자신을 탈락시킨 회사의 물건을 불매하겠다는 말에 '나도 동참하겠어!' 정도만..
회사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난 잘 모른다. 관심도 없다. 아니.. 사실 원래는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생기고 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기업'따위'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마음을 먹었고, 참여연대와 민우회 상근자들을 보면서 시민단체에서 일해도 먹고 살수 있다 + 게다가 기업에선 누릴수 없는 행복 + 정체성 수립 까지 할거라는, 나름대로 대단한 정의부여를 했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엄마와 서너시간 대화한 뒤로 급격하게 우울증에 빠져버렸다. 차라리 잘 되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 내 안에 있던 모든 욕망을 끄집어내어 내가 진짜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은지 살펴보기로 했다.
엄마는 나더러 '그래도 대학 4년 나와가지고...' '중국어도 잘하는데...' '등록금은...' '연봉 4000은...' '나는 20살때...' 주구장창, 결론은 "빨리 취업준비해라." 라는 논지였는데, 나는 '삶이란...' '내가 행복할 때는...' '자아실현은...' '돈은 목적이 아니라...' 로 대응했다. 이런 대화가 처음은 아니었고 작년부터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타격이 컸다.
늘 그렇듯 엄마에게 '난 행복하게 살겠어!' 라고 떵떵거리고 학교로 복귀했는데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위험하다는 주식, 투기만 골라해갔고는 이제 집도 없는 부모님... 나 혼자 살라면 어떻게든 살겠건만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는게 가족이다. 그렇게 어려웠어도 학교 관둔다고 했을때 내 손 들어주고 대학 가겠다고 학원비 달라고 할때도 말없이 대주셨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시민단체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이젠 너가 날 먹여살려야 할것이 아니냐)'라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휴,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불쌍해보였던 회사정장이 갑자기 멋져보였다.
토익책 붙들고 취업준비중인 동기들이 '자아실현'하지 못한다고 속으로 내심 비난했던 내 자신이 바보같았다.
결국 엄마가 나보고 정신못차린다고, 현실을 모른다고 했던 게 다 맞는 말인가 싶었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한..........거야, 불특정다수가 미웠다.
얼마전 일당 5만원짜리 일을 하고 집에 와서 넉다운이 되었더니 할머니가 '그런일 그만하고 공부해서 더 좋은데 취업하지 그러니'하신다. 맞는 말이다. 이렇게 구질구질해서야.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더 대기업 취업을 욕망해야하는 부류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 커리어, 취업뽀개기 사이트에서 이런 저런 자료들을 뒤적거려보았다.
아 젠장, 지금 나에게 내노라할 경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참여연대 청년연수 2,3기 와 민우회 상근자원활동가 2달, 가톨릭학생회, 노래패 회장경력, 그리고 중국 어학연수 6개월이 내 대학의 전부인데, 이걸로 무슨 취업준비를 시작한단 말이냐고요-
취업해서 3년만 빡시게 돈을 모으고 전세자금만 마련하면 관둘까? 그치만 일하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인생 한방인데.
결국 이런 생각때문에 난 취업은 하지 못하겠다.
글쎄... 좀 더 솔직해져볼까? 사실 나에게 운동이 어쩌고 하다가 결혼한 선배, 취업한 선배를 욕한 내 모습이 두려운 건 아닌지. 후배들에게 그들이 행복하지 못할거라며 뿌리고 다녔던 것이 부끄러운건 아닌지.
으아- 모르겠다. 잠을 못자서 우울한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확실히 그건 아니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고민이지만 어쨋든 이김에 이 슬럼프 속에 나를 실컨 담궈볼 계획이다.
얼마전 졸업사진 촬영신청을 하라는 과학생회문자에 안찍겠다는 답장을 하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거의 4학년만 있는 수업시간에 애들은 어디 옷이 좋다는 얘기를 한창 하고 있었고 나는 4학년이 아닌 마냥 딴청을 피워야 했다. 아아-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끼고 싶은데, 그 안에 끼면 걷잡을수 없이 빨려들어갈 것 같아서..
지금 내 마음은 꼭 <Blood Diamond>를 보고서도 다이아몬드 반지를 욕망하는 스레기 같은 상태 같다-;
# by 오디♪ | 2008/04/19 00:28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1)